농산물이나 농업에 대한 뉴스는 흔치 않다. 설령 있더라도 사람들은 그 소식에 별다른 관심을 두진 않는다. 꼭 뭔가 특별한 이벤트나 스토리와 연결돼 있을 때, 일반인들은 비로소 농업과 농산물과 농민들에게 눈길을 준다. 대개는 구제역 파동이나 조류독감(AI) 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같은 부정적 뉴스들인 것도 농업뉴스의 현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2018년부터는 긍정적이면서도 농민들에게 꿈을 꾸게 만들어주는 뉴스들도 제법 굵직한 게 등장하곤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뜨겁게 달군 대한민국 여자컬링대표팀 덕분에 갑자기 의성마늘이 TV광고에도 등장했다. 한송이에 몇 만원씩 한다는 샤인머스켓 포도 역시 전 국민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더니 작년 말쯤엔 전북 임실에서 2킬로그램에 3억원이 넘게 팔렸다는 그 유명한 송로버섯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그게 진짜 송로버섯이길 바라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안타깝게도 송로버섯은 아니었지만.

농산물로 화제가 된 사례는 최근에도 생겨났다. 미식가라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루왁커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등에 서식하는 사향고양이 배설물에 섞인 커피열매로 만든 인도네시아 특산 커피.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며칠 전에 커피와 코끼리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조합이 TV뉴스를 통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바로 코끼리똥 커피. 강원대학교(농업생명과학대학 강원희 교수)가 루왁커피 만큼이나 귀하고 비싼 ‘블랙 아이보리 커피(Black Ivory Coffee= ‘코끼리똥 커피’)를 대량 생산할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방송.신문 기사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이 커피는 루왁커피와 마찬가지로 코끼리 배설물에서 골라낸 원두로 만드는데, 1킬로그램(㎏)에 무려 1,800달러(약 200만원)이나 한다. 이 코끼리똥 커피로 만든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이 약 17달러(약 1만 8천원) 정도라니 우리 농업계에 이처럼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세상에는 사향고양이와 루왁커피, 코끼리와 블랙아이보리 커피만 있는 건 아니다. 박항서 감독이 축구대표팀을 맡아 맹활약중인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 베트남에서도 똥커피는 만들어진다. 바로 사향족제비와 위즐커피. 생산방법은 루왁커피나 코끼리똥커피와 같다. 베트남은 하는데 대한민국이 못할 리는 없을 것이다.

'Black Ivory Coffee'는 코끼리의 배설물에서 원두를 골라내 커피를 만든다. 커피 원두라는 농산물에 스토리를 입혀 더 큰 가치를 만들었다. [사진=Black Ivory Coffee 페이스북]

◇ ‘건강. 재미. 희소성’ 이라는 스토리 입혀야 프리미엄 농산물 탄생

똥과 커피 이야기가 좀 길었다. 그 이유는 이미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코끼리똥 커피 만큼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끄는 농산물이 드물었다는 뜻이다. 아니 전무(全無)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농산물이든 음식이든 맛을 사는 게 아니라 멋을 사는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 농촌현실은 ‘스토리’와 ‘프리미엄 농산물’을 논하기에 그리 녹록하지 않다. 어쩌면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해도 잘 안되니까 이젠 더 이상 안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놓고 농민들의 노력부족을 탓해야할까? 농림부를 비롯해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원, 농업기술센터, 농관원, 농촌경제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세계김치연구소 등 셀 수 없이 많은 (농업)유관단체들이 존재하는 마당에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

실제로 지난 설날 즈음에는 유통가 명절선물로 ‘스토리텔링’ 제품이 대거 등장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살펴보면 지역이름, 젊은 농부 이름, 영농조합 이름, 명인(名人) 이름, 고당도, 청정, 순수, 친환경 등등의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단어의 나열이 대부분이었다. 흔히 말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거나 기발하다는 느낌을 주는 이야기와 스토리는 거의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정확한 현실이다.

물론 '지리적표시제'와 '맛의 방주' 등등 지역 특산품에 주어지는 훈장 같은 제도가 있기는 하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지리적 표시제(GIS; Geographical Indication System) 수혜 상품으로는 프랑스의 ‘샴페인’을 들 수 있다. 이 제도 덕분에 다른 곳에서 함부로 샴페인이라는 이름도 붙이질 못한다. 우리나라도 2002년에 보성 녹차가 지리적 표시 1호로 등록됐다. 이후 순창 전통고추장, 횡성 한우고기, 단양 마늘, 해남 고구마 등 100여 품목이 지리적표시제 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지리적표시제가 우리 농산물 수출과 브랜드 가치 제고에 얼마만큼이나 보탬이 되고 있을까? 세계인들이 이름이라도 한 번 들어본 게 이 중 몇 개나 될까 싶은 것이다. 궁금하지 않은가?

오히려 스토리를 만들거나 멋스러운 이야기를 입히기에는 '맛의 방주'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맛의 방주는 (성경 속 노아가 네모난 큰 배에 생명들을 태웠듯이) 사라져가는 세계 음식을 '맛의 방주'라는 카테고리에 등재하는 시스템이다. 1997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됐고 현재는 우리나라 지자체들도 너나없이 참여중이다. 2018년 현재 전 세계 5천개, 대한민국 100개 음식이 맛의 방주에 올라탔다. ‘제주 푸른콩장’이 우리나라 최초로 맛의 방주에 오른 음식. 우슬식혜, 갓냉이, 꿩엿, 다금바리, 오분자기도 맛의 방주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맛의 방주' 선정 기준은 ▲특징적인 맛, ▲특정 지역의 환경ㆍ사회ㆍ경제ㆍ역사와의 연결성,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어야 함, ▲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된 것 등등이다. 모두 다 스토리를 만들기에 참 좋은 ‘프로필’을 지닌 음식들이다. 등재된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울릉도 칡소, 진주 앉은뱅이 밀, 연산 오계, 밀떡(밀납 바른 손으로 만든 찰떡), 장흥 돈차 청태전, 태안 자염 등 생소하지만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아직껏 김치, 불고기, 갈비 정도만 붙들고 ‘한식 세계화’니 ‘글로벌 푸드’니 하는 공허한 구호만 외치고 있는 걸까.

◇ 수출을 많이 하려면, 잘 팔리도록 이야기와 문화를 가꿔야 한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산물과 음식을 책임지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는 과연 우리 농산물과 음식의 세계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농식품 수출이 크게 늘었다며 수출을 직접 챙기겠노라고 발표하고 나섰다. 그래서 2019년도 농식품 수출액도 지난해보다 11% 증가한 77억 달러(한화 약 8조 6천억원)로 정했다.

이를 위해 이개호 장관이 실질적으로 나서기로 했단다. 또한 농식품부는 수출 확대 방안 4개를 발표했다. ▲상반기 수출확대를 위한 총력 대응 태세 가동, ▲전략적 지원을 통한 경제력 제고, ▲유망품목 육성 및 신규시장 공략, ▲해외 지원조직 역할 강화 및 민관협업 추진 등등이다.

‘총력’이니 ‘대응태세’니 ‘공략’이나 하는 군사용어가 섞인 농식품부의 계획안에 숨부터 턱 막힌다. 탁상행정의 산물임을 계획안에 적힌 단어만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어쨌거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수출비상대책반을 2월부터 운영, 3월까지 전국 7개 시·를 방문해 관련 업계의 수출 애로사항을 점검. 수출 확대를 위해 중국. 동남아 등 아세안지역 특별판촉. 4월 대규모 물산전, 홈쇼핑 프로그램 연계 등 신선농산물 판촉 추진. ▲지난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인삼류(홍삼), 베트남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 등 한류 스타를 활용한 K-FOOD 홍보 진행 예정.

인기가 좋은 품목별 맞춤형 수출 확대방안으로는 ▲딸기는 수출통합조직(K-Berry)를 통해 저가딸기의 내수시장 교란 사전예방. ▲포도는 고품질 품종으로 중국과 동남아 고소득층 시장 공략. ▲김치는 상품 개선을 추진 및 1인 가구 타겟으로 편의점 입점 확대. ▲인삼은 중국산과 차별화를 위해 고려인삼 캐릭터 활용한 홍보 추진.

다 살펴 보고난 이후의 소감이 어떤가? 이대로만 하면 우리 농산물 수출이 올해말 77억 달러를 넘어 100억달러도 돌파할 가능성이 엿보이는가? 사실 그건 아닐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더 참신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큰 프레임만 보더라도 이런 수출진흥정책으로는 우리 농산물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앞서 강조한 바처럼 스토리를 입혀서 가치를 스스로 높여가는 마케팅 계획이 거의 없을뿐더러 그걸 추진할 수 있는 통합조직이나 인력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저 과거에 하던 식으로 하면서 밀어붙이면 될 거라는 분위기만 감지된다. 이래도 되나?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3월 4일 '농식품 수출확대를 위한 수출업체 간담회'를 주재했다. 과거와 같이 보여주기식-실적 위주 정책이 아닌 우리 농산물에 문화콘텐츠를 접목해 항구적으로 경쟁력을 갖게 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사진=농식품부]

◇ 생산이 전부 아니다. 농민 위한 전문 유통-마케팅 조직 강화해야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외국에서 농축산물을 수입해다 먹을까? 지난해 농축산물 전체 수입액은 전년대비 9.4% 증가한 352억 7천만 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약 35조원에서 40조 원 가량을 수입해 온 것이다. 반면 수출액은 2017년 대비 3.1% 감소한 66억 달러(한화 6조~7조원)였다. 수입이 수출보다 무려 7배 가량 높았다.

특이한 점은 지난해 농축산물 수입액의 86%가 FTA 체결국과의 거래금액이란 것이다. 또한 미국산 수입액이 급증했다. 국가별로는 미국, 아세안(ASEAN), 중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뉴질랜드 순이다. 품목별 수입동향을 살펴보면, 닭고기가 24.6% 증가한 13만2,000톤 수입됐다. 돼지고기의 경우 전년 보다 16.6% 수입량이 늘었다. 쇠고기는 전년 대비 9.6% 증가했다. 과일의 경우 오렌지가 전년과 비슷한 수입량인 0.6% 증가했고, 포도는 전년 대비 17% 늘었고, 키위 역시 전년 대비 17% 수입이 늘어났다.

나라별 수입국을 따져보면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약 94억 달러(우리 돈 9조원)의 농축산물을 수입했고, ASEAN 54억 달러( 우리 돈 5조 6천억 원), 중국 46억 달러( 4조 8천억원) , EU 46억 달러 (4조 8천억원), 호주 25억 달러( 2조 6천억원) 어치를 수입했다.

한 눈에 봐도 농축산 분야의 무역수지 적자 폭은 매우 크다. 그런데도 정부는 농림축산물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일만 반복하고 있다. 서둘러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토리와 프리미엄’이라는 화두를 안고 국내 생산단계에서부터 전문적인 마케팅 계획이 선행되어야한다. 물류비용 줄이고 온라인 거래 확대하는 것은 기본이다.

“수출국 현지에서 통할 수 있는 스토리를 상품에 입혀라!”

전문가들은 우리 농산물 수출을 늘리려면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견은 별로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농식품부, 문체부, 주요 한류 기업들, 광고마케팅기획사들이 서로 손잡고 입체적으로 협력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단순히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앞세워 실적 위주로 보여주는 이벤트만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더불어 농산물 수출 및 홍보관련 조직을 다시 만들든 강화하든 실질적인 일을 하는 곳으로 존재하게 해야한다. 농민들이 가져온 풋풋한 농산물과 아이디어를 보듬고 가꾸고 포장해서 해외로 내보낼 열정과 창의가 넘치는 그런 조직과 인력이 넘쳐나야 한다는 것이다. 쓸모없이 중복되는 조직과 인력을 조정하고 통폐합해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할 일없는 농업유관단체들만 넘쳐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해보면 안다. 하지만 어떤 정권도 어느 누구도 해보질 않았다. 그래서 농업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란 탄식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는 것이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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