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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본, 식(食)[기고] 양태규 옛글21 대표
양태규 옛글21 대표

인간의 삶은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는 사람뿐만이 아니고 생명이 있는 존재자는 모두 이를 최대 명제로 삼는다. 그 결과 사랑과 미움 등 온갖 다툼과 송사들은 물론 심지어는 전쟁까지도 불사하게 된다. 그만큼 먹는 문제가 절실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먹는 문제를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는 뭇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하늘이겠는가?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가 하늘로 여기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치자들은 백성들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하는 것이 정치의 목표였고 과제였다. 요임금은 순에게 천하를 물려주면서도 이를 잊지 않는다.

“아, 순아! 하늘의 명이 그대에게 내렸으니(天之曆數在爾躬), 천하의 백성들이 곤궁해지면(四海困窮) 하늘이 준 왕업도 영영 끝나고 말 것이다!(天祿永終)”라는 말을 유언처럼 당부한다.

사실 백성들은 임금이 누구이며 고을 수령이 뉘 사람인가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만 매일 매일의 의식주가 편안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들어와 쉬며(日出而作 日入而息)/ 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갈아 먹으니(鑿井而歌 耕田而食)/ 황제의 권력이 나에게 무슨 상관인가?(帝力何有於我哉)’라며 격양가를 부를 뿐이다. 이것이 백성들의 속성인 것이다. 이를 일찍이 간파한 치자들의 위민선정(爲民善政)이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요임금은 넓고 성대한 하늘을 따라서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을 살피고 관측하여 백성들의 농사철을 알려주는 순천응시(順天應時)를 펼친다.

그 결과 불쌍한 자들을 학대하지 않고 곤궁한 자들까지도 간과하지 않는 성군이 된다. 그를 계승한 순임금 역시 “곡식이 제일이다. 오직 때를 잘 맞춰야 한다.” 백성들은 굶주림을 걱정한다. 기에게는 백곡의 파종을 관장하는 농사담당 장관을 맡기고, 우는 매년 반복된 황하의 홍수를 다스리는 백규(百揆:현 국무총리급)로 임명한다.

마침내 우는 황하의 치수유공으로 천하를 선양받는다. 황하 유역은 빈번한 홍수에 거친 물결·빈약한 제방과 높은 하상(河床)으로 강물의 범람과 제방유실은 반복된다. 그때 마다 뒤따르는 황하 5,500여 km 유역의 피해는 그대로 백성들의 몫이었다. 그간 무너진 제방 복원에 동원된 인력만 해도 만리장성 13개를 쌓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라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황하의 홍수를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만큼 황하의 홍수는 치자의 당면 현안이었다. 그렇지만 각 임금들마다 무척이나 노력을 하고 힘을 기울였지만 번번이 실패 한다. 이때 등용된 곤(鯤)은 제방 쌓기에 주력하였으나 실패하여 죽임을 당한다.

그의 아들 우(禹)는 무서운 집념과 피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거친 물길을 잡는데 성공한다. 12년 동안 3번이나 자기 집 앞을 지나면서도 결코 한 번도 들르지 않았을 정도로 열성이었다. 이때에 생긴 고사 과문불입(過門不入 혹은 三過不入), 그리고 빗줄기로 머리를 감고 바람으로 머리를 빗는 즐풍목우(櫛風沐雨)와 황하의 치수에 너무도 과로해서 비틀비틀 걸었다고 함에 유래된 우보(禹步)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결과 순임금으로부터 천하를 물려받게 된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백성이 아닌가?(可畏非民) 사해가 곤궁하면 하늘의 녹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四海困窮 天祿永終). 오직 입이란 좋은 것을 내기도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니 짐은 두 번 말하지 않겠다라고 하면서 백성을 챙겼다. 이를 간파한 공자는“우는 흠 잡을 데가 없구나!”라고 극찬한다. 은나라의 탕왕 역시 백성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들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여긴다(惟天 生民有欲). 주나라도 농사와 관련된 자연현상을 국가가 나서서 관찰하고 백성에게 알리며 지도한다.

여러 조짐을 보아 해와 달과 날에 때가 어긋남이 없으면 백곡이 풍성해지며, 다스림이 밝아지고, 뛰어난 백성들이 드러나며 집집마다 화평하고 편안해질 것이다. 이처럼 각 왕조마다 삶의 터전인 농업관련 천문 역법과 치수 그리고 제반 농사법을 국가가 직접 관장하며 개발하고 보급하였다. 그만큼 농업은 자연 현상에 좌우됨이 큰데다 백성 개개인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닌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농사 정보나 농사법 등은 백성의 삶과 직결되고 마침내는 국가의 안위에 해당되었다. 그래서 먹고 사는 것이 궁핍할 때는 언제나 이를 걱정하는 민초들의 외침이 있었다. 이는 크고 멀리까지 오래토록 계속 되곤 했다.

“드높은 푸른 하늘이여!(悠悠蒼天)/ 우리는 어디를 가야 편히 살 수 있겠습니까?(曷其有所)/ 도대체 우리 고생은 언제 끝나겠습니까?(曷其有極)/ 언제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曷其有常)” 민초들의 삶이 팍팍하면 하늘이 준 그대의 왕좌도 끝장이니라!(四海困窮 天祿永終) 정말 무겁고 무서운 말이다. 사실 쉬운듯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것이 먹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릇 백성은 먹는 문제를 하늘로 여김을 생각할 때 이것이 백성에 대한 위정자들의 천명(天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국영농신문  agrienews@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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