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는 부실한 행정과 그릇된 제도가 복합된 국내 산란계 축산업의 구조적 결함을 세간에 확인시켜줬다.

그간 AI 사태 때마다 살처분에 급급했던 것처럼, 이번 살충제 검출 확인은 곧바로 전면 출하중지로 이어졌다. 전수조사 결과 적합판정을 받은 1187개 농장 계란(전체 물량의 95.7%)은 즉시 유통이 허용됐지만 소비자들의 불신감은 팽배해 있고, 실질적 피해는 산란계 농가를 비롯한 업계로 귀결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2일 열린 제353회 국회 임시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보고한 ‘국산 계란 살충제 안전관리대책’에 따르면 모든 산란계 농장 1239곳 중 부적합 농장 52곳의 계란은 전량 회수·폐기토록 했다.

이들 부적합 농장 중 31곳이 친환경인증 농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인증기준위배 농장 37곳까지 더하면 친환경 농장 중 10%에 해당하는 68곳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수요 증가로 친환경 축산 인증이 전체의 55%로 대폭 늘어났으나 인증관리는 부실해 사회적 충격을 키웠고, 이는 고스란히 전체 계란제품에 대한 불신감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특히 인증업체의 감독기관인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의 퇴직 공무원 상당수가 업체들에 재직하고 있는 ‘농피아’가 확인됐다. 정부에서 친환경 농산물 인증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이 퇴직 후 민간업체에 재취업해 전직 농식품부 산하 공무원과 농관원의 유착관계가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농해수위 김한정 의원이 농식품부에서 받은 ‘농관원 퇴직자 재취업 및 친환경 인증현황’ 자료에 따르면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친환경 농가 31곳에 친환경인증을 해준 9곳의 업체에 농피아(농관원 퇴직자 중 관련 민간기업 재취업자)의 절반인 40명이 취업한 것으로 파악됐다.

9곳의 업체 중 ‘ㄴ협회’는 전체 심사원 35명 중 24명, ‘ㅇ환경’은 14명 중 6명이 농피아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ㅇ환경’과 ‘ㅊ협회’, ‘ㅂ코리아’ 등 3개 업체는 정부로부터 45일에서 3개월까지 업무정치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같은 상임위 박완주 의원이 농식품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농관원 출신이 민간인증업체 6곳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민간인증기관 64개 업체에 소속된 심사원 608명 중 농관원 출신 심사원이 80명으로 전체의 13%를 차지했다. 이 중 한 업체의 경우 전체 35명의 심사원 중 24명(68.6%)이 농관원 출신 퇴직자가 재취업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친환경 인증을 농관원 퇴직자들이 맡게 돼 모종의 유착관계가 형성돼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걸 끊어줘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으며,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 역시 “방법을 찾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는 부실한 행정과 그릇된 제도가 복합된 국내 산란계 축산업의 구조적 결함을 세간에 확인시켜줬다. 사진과 기사내용은 직접적인 관련성 없음.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의 원인이 된 닭진드기 박멸에 쓰인 살충제는 지난 10년간 50만8164kg, 2만2441L가 사용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농림축산검역본부 데이터를 김현권 의원이 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닭진드기 살충제로 제조 허가, 수입된 제품은 모두 14개 품목이었으며, 판매실적이 없는 3개 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제품의 10년간 판매량이 이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제품의 판매금액은 약 788억원에 이르렀다.

14개 제품 중 지자체가 구매·보급한 3개 제품은 전체 판매액의 70%에 이르는 550억원에 달했다.

김현권 의원은 “전 세계적으로 닭진드기 감염률이 90%에 육박한 상황에서 살충제 사용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으며, 닭진드기로 인한 고통이 심각한데 방제대책을 외면한 정부가 살충제 불법 살포를 키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또한, 당국이 계란생산 농가들을 상대로 피프로닐로 만든 살충제를 이용한 닭진드기 퇴치방법을 권장해 놓고 이제 와서 농가 탓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김 의원은 “정부 당국의 실무 담당 공무원이 대표적인 전문언론들을 통해 살충제 계란의 주범인 피프로닐 사용을 정당화하고 연속해서 반복 살포하라는 살충제 사용방법까지 권장하고 나선 바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당국이 문제의 살충제를 보급한 거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면서 “이래놓고 일이 터지면 애꿎은 농가들만 죄인으로 몰리는 일이 반복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이미 수차례 국내 계란의 살충제 위험성이 제기된 바 있지만 당국은 농가를 대상으로 한 사전예방과 지도 활동을 잘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현행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정부가 양계농가 등 축산물영업자를 대상으로 지자체 또는 위생교육기관이 실시하는 위생관리교육에 대해 국비예산을 지원할 수 있지만, 최근 5년 7개월간 실제 지원액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축산물위생관리법’ 제40조 제2항은 정부가 지자체 또는 위생교육기관이 실시하는 양계농가 등 축산물영업자에 대한 위생관리 교육비용을 전액 또는 일부 지원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홍철호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최근 5년 7개월간 양계농가 등 축산물영업자에 대한 위생관리 교육비용을 지원한 실적이 전무했다.

정부가 양계농가의 위생 관리 및 교육을 방치한 까닭에 일부 산란계 농가들이 살충제를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다는 지적이 가능한 대목이다.

홍철호 의원은 “법률이 정하는 식품안전예산을 정부가 그 동안 지원하지 않았던 것이 밝혀졌다. 정부는 양계농가에 대한 위생관리교육 실시비용을 내년도 예산안에 대폭 편성해 양계농가들이 올바른 방법으로 양질의 양계를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환 기자  kjh@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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