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퀴즈부터 풀어보자.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술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은 뭘까? 물론 기록에 남아 있는 것들 중에서다. 막걸리? 청주? 고량주? 아니다. 정답은 따로 있다. 힌트 하나. 우리가 잘 아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무왕 37년(635년) 신하들과 백마강 고란사 부근에서 00주를 마셨다. 흥이 넘쳤다.”

힌트가 하나 더 있다. 이 술은 누룩이 적게 들어간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1,500년 전부터 전승되어 온 술이다.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불리는데, 술이 좋아 취하는 줄 모르고 마시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기 때문이라고 한다. 며느리들이 술을 빚다가 그랬다는 전설도 있다. 정답은 뭘까? 소누룩주? 주저앉은 며느리주? 아니다. 정답은 바로 소곡주, 충청남도 서천 한산의 전통주다.

◇ 백제 의자왕과 선대 왕들도 마셨던 소곡주. 현재도 1년에 1백만 병 팔린다

그렇다. 기록으로 보자면 소곡주는 백제 왕실에서 즐겨 마시던 술이다. 백제가 망하고 나서 백제 유민들이 옛날을 그리며 빚어 마셨다고도 하니 틀림없이 백제시대의 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도 그리고 그 아버지 왕과 할아버지 왕들도 이 술, 즉 소곡주를 마시며 흥에 겨웠을 것이다. 이 좋은 술을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안 마셨을 리 없다. 백제가 망한 이후로도 많이들 빚어 마셨으니 오늘날에도 이 술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일 게다. 뼈대 있고 족보도 잘 갖춰진 술이 바로 소곡주라는 말이다.

사실 백제는 누룩을 이용한 양조기술로 유명한 나라였다. 일본의 고문서 <고사기>에도 백제인이 일본에 건너와 누룩으로 술 빚는 기술을 전해줬다는 기록이 나온다. 바로 그 백제의 옛터에서 지금도 전통을 이어가며 술을 빚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충남 서천.

충청남도는 국가지정무형문화재이자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알려진 면천두견주를 비롯해 5개의 도 지정무형문화재를 보유한 술의 명소. 한산소곡주·금산인삼백주·계룡백일주·청양구기자주·아산연엽주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술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공식적인 소곡주 소개자료도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다. 문화재청의 소곡주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한산소곡주는 한산지방의 이름난 술로서 빛깔은 청주와 같다. 백제 때의 궁중술로서 백제 유민들이 나라를 잃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빚어 마셨다고 한다. 소곡주를 만드는 방법은 찹쌀을 빚어 100일 동안 익힌다. 이때 며느리가 술맛을 보느라고 젓가락으로 찍어 먹다보면 저도 모르게 취하여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다닌다고 하여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 재밌는 이야기다.

한산 소곡주는 약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백제 술이다. [사진=서천군]

◇ 年 200억원 매출의 명품 전통주 소곡주 & 한산 소곡주 축제

소곡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서천에서 올해도 한산소곡주 축제가 열린다. 올해가 네 번째.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한산시장에서 개최되는데,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도 풍성하다. 물론 술은 지천이다. 소곡주 무제한zone, 칵테일show도 준비되어 있고 소곡주 홍보 프로그램, 양조장에서 참여하는 소곡주 판매부스도 마련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이 나와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파는 먹거리 한마당도 있고 그 옆에 흐드러진 갈대밭도 있다. 게다가 술까지 그득하니 가을 관광객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지난해 가을 한산소곡주축제엔 전국에서 1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소곡주 품평회, 안주대첩(유명 셰프가 축제현장에서 안주를 요리. 여러 사람이 시식 후 가장 소곡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선정)을 비롯해 전통주 교류전도 인기 폭발 프로그램들이다.

소곡주는 1년에 1백만 병이 팔려나간다. 돈으로 따지면 2백억 원 넘는 매출을 올린다. 그만큼 사람들 입맛에 잘 맞는다는 뜻일 게다. 소곡주는 세계 주류 품평회에서도 상을 받을 만큼 나라밖에서도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자랑스러운 술이다.

그래서 서천군은 1,500년 전통을 품은 한산소곡주의 명품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충남사회적협의회와 손잡고 '지역혁신 프로젝트'로 소곡주 축제를 공동 개최하기로 한 것. 그래서 올해 열리는 제 4회 한산소곡주축제는 의미가 전과 다를 것 같다. 또한 소곡주를 아끼는 지역민들과 전문가들은 한산소곡주를 단순한 전통주가 아닌 지역 문화유산으로 대접해야한다는 데 뜻을 모으는 중이다.

소곡주를 아끼는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정겹다. 소곡주는 이미 명품 술이지만, 세계적인 명품술로 거듭날 때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대가 크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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